기복 논리로 교인의 의와 공로를 부추기지 않으면 교인들이 이 같은 행사에 열심히 동참하지 않는다. 이것이 율법주의 신앙에 익숙한 교인들의 현실이다.

오세준 목사<br>새누리교회 담임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담임

부활절 전 40일을 사순절이라고 한다. 사순절을 지키는 교회가 많다. 원래 개혁 교회에서는 사순절 지키는 전통이 없었다. 천주교에서나 지켰고, 기독교에서는 주로 고난주간을 지켰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순절 지키는 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순절을 강조하는 교회가 많다 보니 굉장히 중요한 절기같이 되었다. 그래서 사순절 관련 행사나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를 이상하게 볼 정도이다. 

사순절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생각한다. 사순절 기간 매일 한 끼 금식하며 40일 기도하는 대표적이다. 예수님은 이런 금식을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신 적이 없다. 성경에는 사순절을 지키라는 말씀도 없다.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세비우스(Eusebius)의 진술에 의하면 3세기까지는 사순절이 없었다. 그런데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중세기에 이르러 정교하게 제도로 고착되었다.

중세에는 사순절 기간에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면서 죄를 회개했다. 또한 성당 앞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자기 죄를 거기에 써서 못 박기도 했다. 그리고 수난의 금요일에는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행진하기도 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 같은 중세교회의 여러 전통에 대해 개혁자 칼뱅은 미신적으로 지키는 풍습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개혁자들의 후예로 자처하며 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역행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날 외에는 어떤 절기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이교의 영향을 받아 성경에 없는 절기들이 생겼다. 이 같은 말에 반박과 주장을 펼 것이다. 성경에 없는 절기라고 할지라도 사순절 기간 교인들이 기도에 힘쓰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말이다. 일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순절 기간에 하는 행사가 율법주의를 공고히 한다고 말하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것인가?

이 기간에 행하는 금욕과 희생, 봉사 등의 일을 자기 의로 여기는 교인이 적지 않다. 반면에 사순절 행사에 온전히 동참하지 못하는 교인들은 믿음 없는 교인으로 낙인찍힐까 봐 전전긍긍한다. 참석하려고 애를 쓰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죄의식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이렇듯 양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율법주의 폐단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폐단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순절을 지키는 교회가 대세를 이룬 마당에 이런 주장에 동의할 목회자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사순절을 충실하게 지킴으로 교회 성장에 많은 유익을 가져온다며 반론할 목회자가 많을 것이다.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교회는 어느 때보다 교회 성장이 절실하기에 교회 성장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사순절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지만, 영적으로 역동적이었다. 성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감격했고, 이 복음을 전하는 데 목숨을 바쳤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장과 부흥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를 살리고 참된 성장에 필요한 것은 사순절의 이벤트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참 복음의 회복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순절 행사가 복음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복 논리로 교인의 의와 공로를 부추기지 않으면 교인들이 이 같은 행사에 열심히 동참하지 않는다. 이것이 율법주의 신앙에 익숙한 교인들의 현실이다. 그러니 사순절 행사는 복음의 회복이 아니라 복음의 훼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순절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운운한다고 복음적 교회라는 착각에 빠질까, 걱정부터 앞선다. 이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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