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증거하는 예수(12)-요한복음 8:31~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유대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주시려 시도하지만 저들은 진리를 아직도 개똥처럼 여기고 있다.

떡덩이를 찾아다니기에 바쁜 예수 주변의 사람들. 오늘은 어떠한가. 사진은 초대교회 박해를 피해 사막 한가운데 동굴 속에서 신앙을 지킨 흔적이 있는 모습.
떡덩이를 찾아다니기에 바쁜 예수 주변의 사람들. 오늘은 어떠한가. 사진은 초대교회 박해를 피해 사막 한가운데 동굴 속에서 신앙을 지킨 흔적이 있는 모습.

말의 반복이 부싯돌 깨는 작업은 되어야 원시를 면하지. 바리사이들은 아브라함의 혈통만으로 선민의 자격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나타나서 가라사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승계받을 수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유대인이고,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둔 족보 한 장에 의지하여 의인 행세를 하려드는 유대인들의 억지스런 망상을 깨뜨리고, 그들 가슴을 열어서 복음의 씨앗을 심어주려던 예수는 목표 달성을 이루지 못하고 저들이 던지는 돌팔매를 피하여 그들 곁을 떠난다.

요한복음 8장은 앞부분에 해당하는 3장과 연결된다. 어느 날 늦은 시각에 예루살렘 산헤드린 원로가 되는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왔다. 신분이나 나이로 볼 때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다닐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그가 밤늦은 시간에 예수를 찾아왔을 수 있다.

니고데모가 걸죽한 덕담을 앞세워 예수의 환심을 사려 든다. 본문 그대로를 옮겨본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2:2-4).

여기서 말씀은 물, 성령은 그대로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된다. “성령” 문제가 앞으로 메시아 예수 십자가와 부활 이후 교회시대의 열쇠가 되는데 “성령”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영으로 간단하게 말하고 받아들여야만 교회시대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통용될 것이다.

훌쩍 뛰어넘어서 8장 31절 앞뒤를 통해서 예수의 언행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예수는 자신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하였다.

내 말에 거하면이다. 내 말에 머물면, 또는 내 말에 동의하면, 또는 내 말을 따르면 둘 다 같은 의미다. 또 다른 표현이면 나와 하나가 된다면 진리의 사람이 되고 그 진리는 너희(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가 된다.

예수의 말을 들은 유대-이스라엘 사람들이 발끈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한 번도 남의 종살이를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또 다른 자유가 필요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너희가 진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분명하더냐? 그럼 어찌하여 아브라함의 행동을 하지 않고 지금 너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냐?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동거지를 닮아야지 어찌 감히…, 아브라함은 너희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느니라.

예수의 노여움에 찬 말씀에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거니와 어떤 자들은 예수의 언행을 시비 삼고 나섰다. 그러나 예수께서 빈틈을 주려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너희들 조상, 그러면 아브라함의 행동을 해야지 어찌하여 사탄에게 이용을 당한단 말이냐? 너희는 아브라함 자손이 아니라 사탄의 자식들, ‘너희는 너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밀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3~).

예수의 독설 같은 표현법에 입이 딱 벌어지는 바리새인들, 할 말을 쉽게 잇지 못한다. 그들은 좌충우돌, 예수를 사마리아인이라고 했다가, 네가 아브라함을 오늘 아침에도 만난 것처럼 말하니 혹세무민의 거짓 선지자 등으로 예수를 평가하고 마지막 한마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곧바로 말꼬리를 붙잡고 나선다.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

이 말에 예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요 8:58) 하셨다. 

예수의 이 말에 유대인들은 돌멩이를 던지면서 집단 폭력을 시도하려들었다. 예수는 저들을 피해서 다시 길을 떠난다.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유대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주시려 시도하지만 저들은 진리를 아직도 개똥처럼 여기고 있다.

 조효근/ 목사, 본지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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