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9. 주인과 종, 그리고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주인을 없앤 것이 아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규정할 뿐이다. 주인은 곧 시민이다. 주제넘은 종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는다면, 주인은 그들이 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한다.”

 

예수님의 고난을 따라간 선교사들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순종>의 한 장면
예수님의 고난을 따라간 선교사들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순종>의 한 장면

민주주의 시대에 주인과 종이라는 말은 낯설다. 어떤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도 고용한 노동자를 종처럼 대할 수는 없다. 노동자는 경영자의 부당한 지시나 대우에 대해서 법의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는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조직이든지 고용인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공무원노동조합도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가?

절대적 권한을 가진 주인과 무조건적 복종이 요구되는 종이라는 관계는 민주화된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주종의 관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실제로 존재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는 곧 주인이다. 주주의 결정은 절대적이어서 다수의 주주에 의해 결정된 사항은 어떤 경영자도 되돌릴 수 없다. 경영진을 비롯한 모든 임원과 노동자는 결국 주인인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주의 해임 결정이 당사자에게 아무리 부당해 보인다 하더라도 이사장은 그 결정을 거부할 수 없으며 법에 호소할 수도 없다.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의 결정은 절대적이라는 의미에서 이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은 개념상 주주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주식회사를 예로 든 것은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가 바로 이와 같기 때문이다. 시민은 국가의 주권을 가진 주인이다. 헌법이라 할지라도 시민이 행사한 주권을 되돌리거나 제한할 수는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선출직은 어떤 경우라도 시민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다. 이들은 시민의 이익을 위해 시민을 섬겨야 할, 개념상 ‘종’이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아무리 그럴듯한 다른 명칭을 갖다 붙여도, 그들은 주인을 섬겨야 하는 머슴이요, 하인이요, 서번트, 즉 종임에 틀림 없다.

대통령을 비롯해 시민에 의해 선출된 자들은 고용인이 될 수도 없다. 고용인은 ‘근로 계약에 따라 고용되어 일정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고용인은 적어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 사용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법을 통해 그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의 종을 자처한 이들은 주인 된 시민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념상’ 종인 것이다.

회사의 경영진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공장을 짓는 등, 경영활동을 통해 주인인 주주의 최대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종의 존재 이유는 오직 주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종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주인에게 유·무형의 최고의 이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과거 봉건적 시대, 주인은 종들 가운데 가장 충실한 종을 청지기로 임명했는데, 청지기는 종들을 관리하고 때로는 새로운 종을 고용하기도 했다. 청지기는 주인의 신뢰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필요한 종들을 임명하고 관리하면서 주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오늘날 대통령은 정확하게 시민이 선택한 청지기다. 청지기로서 대통령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장관들을 잘 뽑아 배치함으로써 시민을 위한 최고의 행정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치인들 역시 시민의 종이다. 실제로 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최선을 다해 시민을 섬기겠다’며 자신들을 종으로 뽑아달라고 애걸한다. 그들은 청지기인 대통령이 주인인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한편 시민들에게 필요한 법을 대신 만들어냄으로써 약자를 보호하면서도 최대 다수 시민의 이익에 부합한 ‘공동선’을 만들어 내야한다.

그런데 주인의 입장에서 오늘의 현실을 보면 종들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종들이 허구한 날 서로 싸움질만 하고 있다면, 주인의 이익은 좋아질 리 없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을 향해 싸우지 말고 종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싸우는 종들을 내쫓고 새로운 종을 들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주인은 종들을 불쌍히 여겨 또다시 기회를 주곤 한다.

종들이 서로 싸우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주인에게 서로 잘 보이려고 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상대가 죽도록 밉기 때문이다. 종들이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서로 싸우는 것이라면, 주인의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다. 종들은 주인의 이익을 축내면서 싸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종들은 주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경쟁을 할 것이다. 이렇게 싸우는 경우라면 종들이 싸우지 않는 경우와 비교해 어느 쪽이 주인의 이익이 더 클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똑똑한 주인은 이익이 더 큰 쪽으로 종들을 경쟁시키거나, 아니면 협력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밉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면 주인은 심각하게 손해를 입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주인에게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우긴다. 대놓고 싸우는 종들은 자신들이 주인보다 똑똑하다고 여기기까지 하는데, 종들의 싸움에 불안해하는 주인을 어르고 달래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한다. 이러다 보면 주인은 어느새 종의 종이 되고 만다. 오늘날 싸움꾼이 된 머리 좋은 종들이 터득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싸우면 싸울수록 우매한 주인은 너든 나든 우리의 종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주인의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종들은 사실상 동맹이 된다. 어쩌면 미리 동맹을 맺고 서로 싸우는 척 연기한다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인은 어리석지 않다. 특히 민주주의는 ‘주인이 언제나 종보다 똑똑하다’는 전제 위에 세워지는데, 현재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가? 명문대학을 나오고 법을 전공하는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종들이 시민의 총합으로서의 주인보다 똑똑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러면 당신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종들이 아무리 머리를 써가며 주인을 속이려 해도 주인인 시민은 종인 정치인들보다 낫다.

요즘 정치인들은 상대를 향해 비방, 막말, 조롱 등 온갖 추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없애려 든다. 하지만 주인인 시민은 종들의 ‘노림수’(?)를 안다. 종들이 주인을 섬기지 않는 한, 그러한 종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민주주의는 주인을 없앤 것이 아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규정할 뿐이다. 주인은 곧 시민이다. 주제넘은 종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는다면, 주인은 그들이 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한다.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한 자유와 인권의 시대에,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그대들이 ‘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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