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8. 공동체 회복이 우선이다.

공동체적 가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시민’들이 사회를 향해 말할 때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 신뢰가 갈 것이며,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학교는 공동체다. 학교마저 공동체성을 잃는다면 그런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학교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마주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될 뿐이다.

 

제도로서의 학교는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학교는 단순한 제도 이상이다. 학교는 스승과 제자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스승의 제자에 대한 사랑과 제자의 스승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학생들 서로 간의 배려와 자녀의 인성과 지성의 성장을 선생님에게 맡긴 학부모의 신뢰 등이 덧붙여진다. 사랑, 존경, 배려, 신뢰는 학교가 공동체임을 증명하는 가치들이다. 이 가치들은 법의 영역이 아니다.

학교가 무너졌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2023년 7월 18일,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 2년차 선생님이 학부모의 집요한 민원에 어려움을 호소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무너져버린 학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학생인권을 강조하다보니 교사의 인권이 형편없이 실추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와 자기 자녀만의 특혜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고소고발 남용이 교사들의 자존감을 한없이 추락시켰다고 말한다. 그 해법으로 당장 떠오른 것은 ‘학생인권조례’를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법을 통해 폭력적인 선생님들로부터 학생들의 인권을 지켜냈듯이, (물론 이것 때문에 조례가 생긴 것도 아니며, 조례의 목적이 이것을 위한 것도 아니지만, 현재 논의의 바탕에 있는 전제는 이것이다.) 이제는 법을 통해 무너져버린 선생님들의 인권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법을 통해 이기적인 학부모들의 악성 고소고발을 막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법의 균형추가 학생 쪽으로 기울었으므로 반대편을 위한 법을 강화해서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그동안 선생님들의 머리에 무거운 돌을 얹었다면, 이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머리에도 돌을 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선생님들은 법의 짓누름에 신음하면서 교직에 회의를 느껴왔다. 한때 안정적인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교직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학교와 교사들을 통제하는 법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자사고’이기도 한 민족사관고등학교가 대안학교로 학교형태를 바꾸려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법의 과도한 규제 때문인데, 교육현장이 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고민의 결과다.

학교는 공동체다. 학교마저 공동체성을 잃는다면 그런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학교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마주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될 뿐이다.

공동체의 가치가 무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물질만능주의 때문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는 법도 돈 아래에 종속시킨다. 이런 사회에서 공동체성을 기초로 한 학교문제는 조금도 해결될 수 없다. 학부모들이 고소고발로 겁박하며 교사들을 향해 내뱉는 소리들을 보라. 돈 많음을 드러내는 소리며, 법이 자신의 편에 있다는 소리다. 그 중 압권은 ‘내가 변호사인데.’라는 말일 것이다.

이제라도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공동체의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만 앞으로 학교를 비롯한 우리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여전히 돈의 가치만을 좇는다면, 갈등과 비극은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확대될 것이다.

물론 학생인권이든 교사의 인권이든 인권은 법으로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의 보호가 학교라는 공동체의 무너짐을 막지는 못한다.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되지 않는 사회에서 지켜지는 인권이란 상대방의 인권을 파괴하는 것에 불과하다. 학생의 인권을 지킨다는 것은 교사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이며, 교사의 인권을 지킨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인권을 억누르는 것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한심한 해법을 보라. 이제부터는 학생과 학부모의 잘못을 분명하고 엄중하게 묻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과 존경이 살아나고, 배려와 신뢰가 회복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의 입장 역시 법을 강력하게 적용하자는 것이 전부다. 해결사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무능과 전문성을 내세우는 전문가들의 비전문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시류에 영합하면서 자기이익 찾기에 골몰할 뿐이다. 선생님들에게 동정의 시선이 쏠리자, 정치인들은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잡은 듯이 교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하며, 이때다 싶은 교육전문가들은 일부 개념 없는 학부모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교육계의 입지와 영향력을 높이고자 한다.

공동체의 무너짐을 보면서도 사랑과 존경, 배려와 신뢰 등, 공동체적 가치의 회복을 말하는 이들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정직함이 필요한 때다. 어쩌면 정직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언론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공동체적 가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시민’들이 사회를 향해 말할 때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 신뢰가 갈 것이며,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우리사회에 이런 시민들의 공동체가 아직은 요원해 보이지만 어디에선가 싹을 틔운 이런 공동체들이 곳곳에서 꽃을 활짝 피우길 바란다. 울부짖는 우리사회가 이런 모범적인 공동체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의 가치가 경제적 가치에 우선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이란 ‘우상’ 대신 사랑의 ‘하나님’을 따른다고 늘 말해 왔기 때문이다. 성경(베드로전서4장)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무너지는 공동체를 보면서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것은 법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움의 회복이며, 서로를 향해 인간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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