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 - 전도하지 마라

목회자들은 (허황된) 교회성장이나 쇠퇴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 어느 경우든 어떤 방법도 없다. 감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목사가 할 일은 분명하다.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자신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목회자끼리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경쟁은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도 개선될 것이다. 지금보다 절반인 그리스도인만으로도 사회에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교회를 개척한 목사가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해야 교회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선배 목사는 개척을 하고 교회를 건축한 상태였다. 선배 목사가 준 답은 이렇다. “열심히 전도해라.” 자신도 번듯한 교회를 짓고 싶었던 목사는 선배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부인과 함께 교회 앞 전철역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도했다. 서울 근교의 구시가지에 개척했던 그는 낮에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했다. 하교 시간에는 학교 앞에서, 퇴근 시간에는 다시 전철역으로 나가 전도하는 것으로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했다. 5년을 그렇게 했지만 교인은 늘지 않았다.

다시 교회를 건축한 선배 목사를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다. 선배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의 전도가 부족했다. 더 열심히 전도해라.” 해가 지나도 똑같은 질문과 대답은 반복됐다. 개척교회 목사는 자신의 열심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선배를 보면서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하란 것인가? 전도광이라 할 만한 그 후배 목사의 열심을 부정할 동료들은 아무도 없었고 차마 말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교회건축의 비결이 전도라고 주장하는 선배에게 그 후배는 전도하지 않는 나태한 목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가 폭발한 개척교회 목사는 결국 교단을 떠나버렸다.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와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목회를 시작했던 동년배 목사의 이야기다. 오늘날 전도로 교회성장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동의하던 하지 않던 사실이다.) 실제로는 20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그래왔다. 사실 위의 이야기도 20년 전의 이야기다. 전도와 교회 성장의 연관성은 이미 철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20년 전에 후배에게 무조건 ‘전도하라’고 조언하고 그 결과를 조롱(?)했던 목사도 지금은 젊은 목회자들에게 전도하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도가 어렵다느니, 전도의 문이 막혔다느니, 전도의 시대는 끝났다느니, 목회 선배로서 나름의 분석을 해댄다.

교회를 건축했던 목사들은 이제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거나, 후임을 물색하고 있다. 필자가 놀라는 것이 있다. 그들 중 누구도 전도를 열심히 하는 목회자를 후임으로 세우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전도하는 목사는 개척교회를 세운 담임목사일 텐데 이러한 ‘담임목사’를 후임으로 데려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하나 같이 타 교회 ‘부목사’를 후임으로 세우고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세습이나 임지교환 등과 같은 치부를 말하지는 않겠다.) 첫째는 전도만 열심히 했다는 목사를 이제는 교인들이 싫어한다. 둘째는 더 직접적인 이유인데, 오늘날 여기에 해당하는 목사는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아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은퇴를 전후한 목사들은 한 때 자신의 목회 성공(?)에 취해 함부로 후배들을 비난했던 과오에 대해 사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오늘날 교회에 대한 사회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은 그들이 빠져버린 성공신화의 결과이기에 이 또한 교회와 후배 목회자들의 앞길을 막은 죄에 대해 사죄해야 하지 않겠는가?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 교회의 교인 수는 줄기 시작했다. 현재 거의 모든 교단은 10여 년 전 최고점에 비해 20% 내외의 교인 감소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이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을 굳이 교단들이 발표한 통계 수치를 들어가며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인정할 것이다. 확인하려면 각 교단이 발표한 통계를 들여다보면 된다.

이런 현실에서 교단의 지도자들이나, 스스로 한국교회의 책임자임을 자처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은 전도 이외의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교회에서 전도는 습관이다. 목회자는 전도하라고 말해야 하고, 교인들은 전도하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 목회자는 전도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서는 교인 감소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할 판이며, 교인들은 전도하지 않으면 천국의 입장권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사실 이렇게 해도 교인 수의 감소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목회자들도 교인들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목사들은 전도 말고 다른 것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른 것을 시도하다 교인이 줄면 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전도를 주장하고도 교인이 줄면 그 책임을 교인들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립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 중에는 자신이 은퇴할 때 받을 퇴직금과 목회 보상금을 이미 교회와 합의하고 공증(?)까지 해 놓은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들은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에 해당 교회의 교인이 반으로 줄어도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니 곧 절반이 될 것이 예상되기에 자신의 손해를 미연에 방지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미 이렇게 은퇴한 목사들은 교회가 겪는 어려움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필자의 주변에도 이런 교회가 있으며, 독자들의 주변에도 이런 교회는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전도하지 말라.’ 특히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는 젊은 목사들에게 전도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순진한 그들이 선배의 말을 믿고 5년 동안 전도한다면 5년의 인생을 낭비한 것이며, 10년 동안 그렇게 한다면 10년을 낭비한 것이다. 단언컨대 전도를 통해서는 단 한 명의 교인도 생기지 않는다. 그것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정말 ‘나쁜 목사’다. 더한 욕을 퍼부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예외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 예외에 눈길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적어도 앞으로 10년간은 전도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교인 수가 감소할 것이다. 전형적인 예는 이것이다. 교인 수 1000명의 교회는 500명의 노인들의 교회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기간 전도는 통계적 유의미함을 갖지 않을 것이다(이 말은 평균적으로 전도를 한 교회들은 역으로 성장하거나 그나마 감소폭이 줄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초대형교회들은 이 기간, 어느 정도는 더 성장할 것이다.

대형교회 교인들의 경우 두 가지 유입 원인이 있는데, 하나는 새 신자이며 또 하나는 다른 교회로부터 건너온 신자들이다. 한국교회의 교인 수가 준다는 것은 인구감소(특히 연령별 감소)에 따른 자연감소와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둔 경우의 합이다. 그런데 대형교회는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둔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흡수할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증가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중소형교회에 비해 대형교회의 경쟁력이 월등하기에 이탈의 폭은 적고 유입의 폭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소형교회들이 대형교회를 떠받쳐 주지 못하는 시점이 오면, 대형교회의 성장도 끝나고 쇠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은 (허황된) 교회성장이나 (보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쇠퇴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 어느 경우든 어떤 방법도 없다. 감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희망이 있다. 교인의 감소는 목회자의 경쟁을 심화시킨다. 결국 교인들의 종교적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목회자들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처음부터 ‘나쁜’ 교인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사가 할 일은 분명하다.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자신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목회자끼리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경쟁은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도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보다 절반인 그리스도인만으로도 사회에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현실을 직시한 젊은 목회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종교적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전도는 당신들이 갖추어야 할 경쟁력이 아니다. 어떤 교회가 후임을 정해야 할 때, 10년 간 전도한 ‘개척교회 목사’와 10년 간 유학하고 돌아온 ‘박사학위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는 주저함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따라서 전도는 하지 말아라.

(전도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는 주장에는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전도여야 한다. 그러나 이 명령이 2020년대 한국사회의 거리로 나가는 것이라는 편협한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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