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교수-<좋은 나무>에서 ‘기독교가 이념갈등을 해소하려면’ 대안 제시

“좌·우를 초월하면서,
 우파가 강조하는 ‘자유’도, 
 좌파가 추구하는 ‘정의’도 
 다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
 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 1946년 1월부터 시작된 신탁통치 반대운동. 이로 인해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좌우파가 극심한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 한국의 고등 종교들이, 특히 한국의 최대 종교라는 지위를 얻은 기독교가 책임져야 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문위원장이자 고신대 손봉호 석좌교수는 최근 <좋은 나무>71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손 교수는 ‘기독교가 이념갈등을 해소하려면’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손 교수는 지금의 한국 좌우파 극한 대립이 “마치 1945년 해방 직후의 우익 대 좌익의 갈등이 재현되는 것 같다”고 빗대서 말했다.

“이런 대립은 좌파, 우파, 그리고 애꿎은 시민들 모두에게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조 말기에 조정이 사분오열되므로 나라를 잃고 서로 싸우던 계파가 모두 속국 백성이 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상황도 국력낭비로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을 약화하여 결국 우리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말하자면 거룩한 확신을 가지고 어리석은 자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모두 모래알 같아서 단결할 줄 모른다’라고 일본인들이 비웃었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비아냥거림에 장단을 잘 맞추고 있다.”

최근 이런 상황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표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한다고 우려한 손 교수는 그런 건실한 시민들의 두려움은 다음 해 총선 때가 되면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겠지만 제대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아 지금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라고 진단했다.

“그런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시민운동 단체들조차 대부분 정치집단으로 변질되어 갈등의 한쪽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중재와 화합의 역할은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손 교수는 “이때야말로 한국의 고등 종교들이 그 임무를 감당해야 하고, 특히 한국의 최대 종교라는 지위를 얻은 기독교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 기독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이념적이 되고 말았고, 심지어 그 분열의 선봉에 서서 악순환을 부채질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과거 군사정부 때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에 충실했던 보수 교인 상당수가 우파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 한국에서처럼 기독교가 이념에 근거한 대규모 정치집회를 주도하는 경우는 세계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윤리적 실패로 사회의 신임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가 이 위험하고 어리석은 이념 논쟁에까지 끼어들어 상처를 덧내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교회는 문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손 교수는 이념이란 종교적인 확신으로 변질된 정치적 관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는지를 생각하면 이념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가운데 하나다. 철학자 포퍼(K. Popper)가 지적한대로 이념은 매우 위험한 “열린사회의 적”이라는 것이다.

“이념 그 자체가 종교적인 확신이 되어 버린 신념인데 그것이 다시 기존 종교의 신앙으로 정당화되고 독단적이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 종교적 순교 정신과 애국정신이 더해지면 어떤 파괴적 행위라도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이는 사회 안정과 안전에 엄청난 위협이 될 뿐 아니라, 기독교 자체에도 심각한 상처를 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양 교회가 식민지주의에 동조한 것 못지않게 기독교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파나 좌파에 속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날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신과 타인에게 매우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념은 그 추종자들에게는 ‘객관적’이고 ‘모두를 구원할 진리’인지 모르지만, 복음 외에는 ‘모두를 구원할 진리’ 같은 건 없다. 마르크스도 자신의 이론만 “과학”(Wissenschaft)이고 그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이론은 “이념”이므로 “거짓 의식”(falsches Bewußtsein)이라고 폄하했다. 그런데 그 “과학”이라던 마르크스주의는 후에 “이념”의 전형이 되어 버렸고, 그 “객관적 진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비참한 삶을 보내야만 했다는 것이다.

“모든 이념은 역사적이고 상대적이다. 공산주의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고, 자본주의도 심각한 약점들이 속속 드러나서 계속 수정되고 있다. 인류 대부분이 찬동하고 추구하는 민주주의조차 그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 심각한 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 이론에 목을 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비도덕이다.”

그래서 적어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념의 추종자가 될 수 없다고 손 교수는 강조한다.

중재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이념을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손 교수는 제시했다. 어느 한쪽에 서서 다른 쪽만 고치라고 요구하는 한, 어떤 중재도, 화합도 이룩할 수 없다. 이념을 상대화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태도이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중재와 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좌·우를 초월하면서, 우파가 강조하는 ‘자유’도, 좌파가 추구하는 ‘정의’도 다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탐욕으로 가득 찬 우파의 뻔뻔함’과 ‘독선에 취해 있는 좌파의 위선’과는 모두 거리를 두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잘못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성경의 가르침이나 보편적 윤리에 어긋난 잘못은 강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손 교수는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고 하루라도 더 빨리, 근거 없는 거짓 절대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버리고 타인의 권리와 의견도 존중하게 되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될수록, 그만큼 더 빨리 우리 사회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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