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30주년 맞은 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 원장 최 준 기 신부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눈뜨고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함께 살아낸 나눔의집
30년 걸음은 복음을 살아낸 현장

 

   
▲ 최준기 신부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은 성공회 나눔의집. 노원, 성북, 인천, 봉천, 수원, 포천, 용산, 동두천, 춘천 등 9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나눔의집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말에 ‘나눔의 집’협의회 원장 최준기 신부(52)는 선뜻 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눔의집이 이어온 걸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나눔의 집은 이것’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든지 그 지역 가난한 이들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몸짓을 결정하고 살아가기에 “정해진 매뉴얼이 없고 늘 현장이 매뉴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눔의집 걸음을 최 신부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 쉬는 숨”이라고 말했다. 지역과 함께 숨 쉬며 이어온 걸음이기에 모양도, 하는 일도 제각각이다. 가장 큰 관심은 나눔의집이 이어온 들숨과 날숨, 거기에 복음이 뜨겁게 발현되는 것이었다.

# 가난한 삶에 눈뜨다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눈뜨고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함께 살아내는 것. 이것이 처음부터 줄곧 나눔의집이 이어온 걸음이다. 1985년 성공회 신학생과 청년들로 시작된 신학연구모임에서 이듬해 도시빈민운동인 나눔의집 준비팀이 결성되었고, 노원나눔의집이 그 첫 발을 내딛었다.

“도시빈민운동으로 시작돼 IMF를 겪으면서 실업 등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부분에 초점 맞추기 시작했고 지역 자활 운동 중심으로 이어졌어요.”

최 신부는 94년에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품 받고 3년쯤 사제를 지내다 96년에 공부를 위해 인도로 떠났다. 5년 만에 돌아와 그때부터 용산 나눔의집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나눔의집에 몸담아왔다. 현재는 성북나눔의집 대표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돌아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나눔의집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사역의 초점은 ‘빈곤’의 문제인가 아니면 ‘가난’에 대한 부분인가? 과거 너나 할 것 없이 어렵던 시절과 달리 우리나라는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고 복지의 테두리 안에서 빈곤 계층을 돌보고 있는 마당에 나눔의집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컸다. 나눔의집 성격을 ‘빈곤’을 넘어 ‘가난’의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빈곤은 경제적으로 수치화된 상대적 개념이라면 가난은 영적인 부분으로 보았습니다. 성경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영적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단지 빈곤의 문제를 넘어 이 시대에 가난이라는 영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 신부는 그런 이해로 나눔의집을 통해 상대적으로 시대나 상황 속에서 억압 받는 갇힌 사람들,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행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주력해 왔다.

 

예언자적 소명으로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살피고 ‘균형 맞추기’를
위해 힘써야 할 교회가 오히려 축복을 물질에 국한시키고 안주하게 만들어


# 정의와 자비의 균형
가난의 문제를 영적인 시선으로 깊이 있게 성찰하고 그것을 지역과 함께 삶으로 살아내는 것, 그러기에 나눔의집의 무게중심은 ‘나눔’이라는 일과 함께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살아내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나눔의집이 운동집단화 되지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시혜적인 나눔, 현상적인 문제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지켜가야 할 중요한 개념으로 최 신부는 ‘정의’와 ‘자비’의 균형을 제시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할 때 사회 구조의 변화를 부르짖으면서 당장 학비가 없어 눈물 흘리고 힘들어하는 동급생에게는 ‘너는 시위도 안 나가면서’라고 비판하며 대상화시키는 잘못을 저질렀어요. 넓은 세상을 보고 작은 풀잎을 사랑하는 것, 이 균형을 지켜가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 신부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균형은 항상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이 깨지는 걸 불안해하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위험합니다.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맞춰지는 과정에서는 균형이 깨어져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균형이 깨어지는 게 균형 찾기의 과정이라는 말, 최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빌어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것을 강조하는 교황에게 ‘과격하다’는 지적이 일자 교황이 ‘내가 과격한 것이 아니라 가진 자가 더 가져가는 흉포한 사회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최 신부는 “자칫 가난한 자의 편에 선 게 편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늘의 사회에서는 기울어진 추에서 중심을 잡아내는 게 균형”이라고 풀이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의 역할은 끊임없이 시대 속에서 예언자적 소명으로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살피고 ‘균형 맞추기’를 위해 힘써야 하는데 오히려 안주하게 만들고 축복을 물질에 국한시키는 것을 지적했다. 양극화 속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교회는 오히려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고 안주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느 시대든 복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것은 죽어서 천국 간다는 식의 영토적 개념이 아니라 주권적 개념이지요.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을 소망하는 교회라면 오늘 가장 눈물 흘리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고민하고 그들과 함께 해 주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거듭남에 대해 물을 때 예수께서 소유를 버리라고 하자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대목, 최 신부는 “말씀 앞에 양심이 찔림받고 흔들리면서 조금씩 복음의 길을 찾아가는 게 신앙의 과정”이라면서 “오늘의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방향(맘몬)을 제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나눔의집에서 발견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해 들려달라는 말에 최 신부는 “딱 한 가지 간증 거리가 있다”고 했다. 돈이 없어 일을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곳에서 ‘사람 대접 받았구나’ 하는 신앙적 일체감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


# 맑은 공기의 추억
“용산 나눔의집에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몇 년간 공부방을 운영하다 마치고 이전했어요. 한참 후에 그때 같이 공부했던 한 아이가 지나가다 ‘나눔의집’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와 우리와 또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거리감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나눔의 집이에요.”

가난한 사람들, 사방이 온통 벽으로 막혀 있던 사람들이 나눔의집을 통해 고개 들고 맑은 숨 한 번 쉬는 것, 그게 나눔의집이 30년간 존재하는 이유라고 최 신부는 말했다. 나눔의집 자활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찾아 나간 사람들 대부분은 다시 길을 잃고 돌아오기 일쑤다. 하지만 그렇게 맑은 공기 한 번 들이켠 것이, 이곳에서 ‘사람 대접 받았구나’ 하는 신앙적 일체감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최 신부는 믿고 있었다.

나눔의집협의회는 오는 9월 나눔의집이 처음 시작한 노원구 상계동에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사를 갖고, 11월 13일 대한성공회 대성당에서 3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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